국내 스릴러 장르의 대표 감독은 단연 나홍진입니다. 황해, 곡성, 추격자로 대표되는 나홍진의 영화들은 스릴러 장르의 영화팬들을 열광케 했습니다. 차기작을 준비 중인 나홍진 감독은 올해 여름 태국의 반종 피산다 나쿤 감독과 함께 공포 장르에 도전해 국내 영화팬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번 포스팅은 나홍진 감독이 제작에 참여한 공포 영화 랑종의 리뷰와 해석을 전달합니다.
곡성과 비슷한 랑종
랑종은 태국에서 외딴 지역인 '이산'에서 벌어지는 초자연적 현상을 그리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의 공포 영화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밍의 가족들이 목숨을 잃고 밍 자신도 이상한 일을 겪으면서 밍의 가족들이 큰 위험에 처하게 되는데 이 모습이 언뜻 곡성과 겹쳐 보입니다. 나홍진의 대표작품인 곡성 또한 외딴 시골마을에서 불가사의한 일들이 벌어지고 주인공 종구의 가족도 위험에 처하자 종구와 주변 인물들이 고군분투하는 내용입니다.
랑종과 곡성은 문제 해결 방식도 유사합니다. 곡성에서 종구의 딸이 아프자 현대 의학이나 기존 종교의 힘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 토속신앙인 무당의 힘을 빌립니다. 랑종도 밍에게 문제가 생기자 무당인 님과 싼티의 도움을 받습니다.
두 영화 모두 믿음에 관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곡성의 주인공 중구는 딸을 지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지만 영화 막바지에 치닫으면 무당 일광과 불가사의한 존재인 무명의 사이에서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둘 중에 누구를 믿냐에 따라 중구의 가족의 운명이 걸려있는 중대한 문제에서 나홍진 감독의 연출과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였습니다.
랑종도 마찬가지로 믿음이 주된 화두입니다. 영화 초반부터 조카 밍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님은 후반부로 갈수록 자신이 모시는 바얀 신에 대한 믿음이 흔들립니다. 물론 그 믿음을 뒤흔드는 것은 언니인 노이가 원인입니다. 님에게 대놓고 바얀 신을 직접 대면하거나 본 적이 있냐고 바얀신의 존재의 근원을 뒤흔들어 놓은 결과 밍을 구하기 위한 마지막 단계에서 님은 목숨을 잃게 됩니다. 님이 목숨을 잃게 된 이유는 바얀신에 대한 믿음이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이 모시는 신이기 때문에 바얀신이 선한 존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원시 신앙의 존재는 선과 악의 구분이 모호하며 자신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선하게 될 수도 악한 존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왜 밍이 저주를 받았을까
밍이 저주를 받은 것은 가문의 역사와 관련 있습니다. 먼저, 밍의 외가는 오래전부터 바얀신이라는 신을 모시는 가문입니다. 어머니 노이가 바얀신을 받아들여 무당의 길을 걸어야 하지만 거부하고 동생인 님이 바얀신을 받아들이도록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노이는 천주교를 믿게 되었지만 바얀신을 거부했기 때문에 바얀신의 분노를 사게 되었습니다.
밍의 친가는 대대로 방적공장을 운영하며 노동자를 착취하고 보험금을 목적으로 공장에 불을 질러 많은 사람과 짐승, 나무를 불태운 악행을 저지른 과거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 악행으로 인해 밍의 가문은 누군가로부터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저주로 인해 먼저 밍의 오빠인 맥스가 젊은 나이에 죽고 밍의 아버지 위롯도 고통받으며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다음으로 밍이 저주의 다음 순서가 된 것입니다. 밍이 저주받은 이후 밍의 어머니와 외삼촌 가족도 고통받게 되니 밍이 저주에 걸린 이유는 밍이 특별한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밍의 가문 자체가 저주받은 가문이기 때문입니다.
밍의 저주를 키운 것은 어머니 노이의 공이 큽니다. 영화 초반부부터 상태가 좋지 않은 밍을 님이 발견하고 도움을 주려하지만 바얀신이 내리는 신병이라 잘못 이해한 노이가 님의 도움을 거부해서 님의 상태가 더욱 악화됩니다. 여기에 노이 자신이 신병을 해결하기 위해 천주교의 힘을 빌렸던 것과 달리 정작 밍은 성당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어설픈 무당에게 가서 밍의 상태가 차에 키를 꽂은 상태가 되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또한, 퇴마 의식을 앞둔 동생 님에게 바얀신의 존재를 의심하게 만들어 님을 죽게 만듭니다.
잔인하기만 한 영화
한국 스릴러 장르의 대표 주자인 나홍진과 태국 공포 장르의 대표 주자인 반종 감독의 만남은 개봉 전에 기대를 받았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기대 이하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 곡성과 랑종은 비슷한 구석이 있지만 곡성은 고평가를 받고 랑종은 저평가를 받는 원인에는 랑종의 영화적 완성도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곡성도 잔인함의 정도가 꽤 높은 영화이지만 서사적 완성도와 연출, 배우들의 연기 모두 훌륭합니다. 반면 랑종은 잔인하기만 하고 서사, 연출, 연기 모두 아쉽기만 합니다.
밍이 저주를 받게 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 불충분하고 밍의 어머니 노이의 캐릭터가 저렇게 까지 해야하나 싶을 정도로 설정이 과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연출 부분에서도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시작한 초중반까지는 다소 평범하게 흘러가다가 후반부 대학살이 벌어지는 장면에서는 페이크 다큐멘터리가 아닌 영화 'REC', '그레이브 인카운터'의 흉내라고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영화 후반부 밍의 가족이 키우는 애완견을 잡아먹는 장면이나 밍의 조카를 해하는 장면, 카메라 맨의 장기가 노출되는 장면은 굳이 넣었어야 했을 정도로 잔인함의 정도가 과해 눈이 찌푸려지기도 했습니다. 밍이 노출하는 장면도 필요한 장면인지 의문스러웠습니다.
아쉬운 면이 있는 랑종이지만 페이크 다큐멘터리 장르와 엑소시즘 장르를 좋아하는 공포 장르 마니아라면 한 번쯤 봐도 괜찮을 영화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