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6일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K리그 챌린지 4라운드 서울 이랜드와 안산 그리너스 경기가 열렸다. 경기는 서울 이랜드가 1대0으로 승리했지만, 결과와 별개로 주목할 점이 있었다. 서울 이랜드 후보명단이 6명으로 상대 팀보다 1명 적었고, 교체카드도 2장만 사용했다. 서울 이랜드의 단순한 실수가 아닌 규정 위반으로 교체카드가 줄어드는 페널티를 받은 것이다.
K리그는 2013년부터 의무 출전 조항을 시행하고 있다. 의무 출전 조항이란 매 경기마다 의무적으로 18명의 출전명단에 23세 이하 선수를 2명 포함하고 그 중 1명을 무조건 선발 출전해야 한다. 만약 명단에 포함하지 않거나 선발 출전시키지 않을 경우, 후보 선수를 줄이거나 선수 교체 수를 줄이는 페널티를 준다. 예를 들어 23세 이하 선수를 1명만 등록하면 출전 명단이 17명으로 제한되고, 선발 출전시키지 않으면 선수 교체카드가 2장으로 줄어든다. 여기에 2부리그 챌린지는 1부리그 클래식보다 한 살 낮춰 22세 이하(1995년 1월 1일 이후 출생자) 선수를 2명 등록하게 했다.
특정 연령대 선수를 의무적으로 출전시키게 하는 조항은 해외 리그에서도 찾기 힘들다. 프로축구연맹이 이런 조항을 만들게 된 배경에는 지속된 K리그의 경쟁력 저하에 있다. 최초 원정 16강에 진출한 2010 남아공 월드컵 국가대표 명단에서 K리그 소속은 전체 23명 중 13명으로 절반이 넘었다. 이후 K리그 선수들의 해외리그 진출이 많아져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K리그 소속이 6명으로 절반으로 줄었다. K리그 경쟁력 저하는 아시아 클럽 최고 대회 AFC 챔피언스 리그 성적 부진으로 이어졌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K리그팀은 매년 결승에 오르며 아시아 최고 리그에 등극했지만, 이후 3년간 결승진출 1회에 그치며 부진이 시작됐다. 이에 프로축구연맹은 프로구단들이 어린 선수를 육성하고, 우수한 유망주를 조기에 발견할 수 있도록 의무출전 조항을 만든 것이다.
프로축구연맹 의도와 달리 현장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특히 22세 의무 출전 조항이 시작된 2015시즌 당시 K리그 챌린지 소속 고양 자이크로는 시즌 대부분 경기에서 22세 이하 선수를 출전시키지 않아 페널티를 받으며 시즌을 진행했다. 고양 다음으로 페널티를 많이 받은 FC 안양은 이에 대해 “승리가 최우선 목표인 프로팀 처지에서 기량이 확실하지 않은 어린 선수를 무작정 출전시키기 어렵다. 지도자 스타일과 각 팀 처지에 따라 다르게 대처할 수밖에 없다.”라며 프로팀 처지를 대변했다. 22세 이하 의무출전 조항에 대해서는 “출전 조항으로 어린 선수를 출전시키다 보면 장기적으로 K리그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선수가 부족한 2부리그 팀에게 부담인 것은 사실이다.” 챌린지 각 팀은 지역 고등학교와 연계해 유소년을 키우고 있지만, 실력이 뛰어나 바로 프로 무대에 진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결국, 22세 이하 선수를 따로 영입해야 하지만 재정이 부족한 챌린지 팀들은 선수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대해 FC 안양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잠재력 있는 어린 선수들은 1부리그를 선호해 2부리그로 오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프로팀뿐만 아니라 대학교 축구부에서도 현장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수원대학교 축구부 배문기 코치는 의무출전 조항 이후 대학교 축구부가 직격탄을 맞았다고 말한다. “챌린지의 22세 의무 출전 조항으로 축구부 졸업생의 프로진입이 예전보다 어려워졌다. 코치 부임한 지 4년 차인데 해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대학교를 졸업한 선수의 나이는 만 23세인데 22세 규정이 적용되는 K리그 챌린지 팀에게 대학 졸업 선수는 활용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최근 4년 동안 수원대 축구부 졸업생 중 프로에 진출한 인원은 3명에 불과하다. 배문기 코치는 프로진출에 실패한 제자들의 선택지가 제한적이라며 “지도자 과정을 밟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는 극소수다. 입대하거나 평생 해온 축구를 관두고 다른 직업을 찾는 제자도 있다. 스승으로서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최근 K리그 챌린지 팀들은 의무출전 조항에 적용되지 않는 졸업생 대신 1, 2학년 재학생들을 스카우트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배문기 코치는 “제자들의 미래를 위해 신입생이 들어오면 졸업 전에 프로입단을 하라고 권유한다. 하지만 축구부로서는 신입생을 키워 3, 4학년 때 써야 하는데 중간에 나가면 축구부 운영에 차질이 생긴다. 연맹 의도는 이해하지만 지금 상황으로서는 조항을 바꿀 필요가 있다.”라며 어려움을 전했다.
K리그 클래식, 챌린지 무대에서 페널티를 감수하고 의무출전 조항을 무시하는 사례가 발생하자 프로축구연맹은 올해부터 2군 리그 R리그를 도입했다. 연맹은 R리그를 통해 의무출전 조항에 해당하는 선수들의 K리그 적응과 경기력 유지를 돕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K리그 전체 22개 팀 중 12개 팀만 참여해 K리그 모든 팀이 참여하지 않았다. 주로 챌린지 팀이 불참했는데 선수층이 얇고 재정이 부족한 챌린지 팀이 2군 리그를 위해 선수단을 따로 운영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FC 안양 관계자는 R리그 참여에 대해 “안양은 R리그 운영을 위한 추가 자금이 부족해 앞으로도 참가할 계획이 없다”라고 밝혔다.
R리그 대신 FC 안양 관계자와 수원대 축구부 코치는 챌린지 의무출전 나이를 23세로 올리자고 주장한다. FC 안양 관계자는 의무출전 나이를 23세로 올리는 것에 대해 “단순히 페널티를 피하려고 기량이 부족한 선수를 출전시키는 건 팀과 선수 모두에게 도움이 안 된다. 23세로 올린다면 선수층이 부족한 2부리그 팀의 숨통이 조금이나마 트이고 경기력도 좋아질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수원대 배문기 코치는 “23세로 바뀌면 졸업생들의 프로진출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늘어날 것이다. 페널티도 몰수패 수준으로 강력하게 해 무조건 출전시키도록 해야 한다. 또한, 프로팀들이 적극적으로 어린 선수를 육성해보겠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라며 더 강력한 조항 신설의 필요성을 설토했다.
일본과 중국에서도 K리그의 의무출전 조항을 올해부터 도입했거나 도입 예정 중이다. 천문학적인 돈이 오가는 중국 슈퍼리그와 리그 시스템이 탄탄한 일본 J리그가 유망주 육성까지 K리그를 앞서 간다면 K리그의 침체는 장기화될 것이다. K리그의 위기 속에서 프로축구연맹의 냉철한 현실 판단과 장기적인 계획이 요구된다. 이에 대해 수원대 배문기 코치는 “프로축구연맹의 제도 하나가 프로팀, 대학교 축구부, 선수 모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탁상공론이 아닌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 달라.”라고 밝혔다.
+ 2017년에 작성한 글
+ 2020년 기준으로 K리그 1, 2 모두 의무출전 나이는 만 22세로 통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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