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 안양 김민균 축구선수 인터뷰_FC안양 김민균의 축구인생과 군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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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인터뷰

FC 안양 김민균 축구선수 인터뷰_FC안양 김민균의 축구인생과 군입대

by 박달타운 2020. 4. 27.

FC 안양은 김민균과 정재희 선수의 활약으로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FC 안양의 김민균 선수를 만나 최근 팀 상승세와 축구인생 그리고 얼마 남지 않는 군입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만나서 반갑다. 최근 컨디션은 어떤가?

 

최근 일주일 동안 리그와 컵대회를 포함해 3경기를 뛰어서 아무래도 체력적으로 지친 부분이 있다. 그래도 그 중 FA4라운드 FC 서울과의 경기는 개인적으로 뜻깊은 경기라 기억에 남는다.”

 

- FC 서울과의 경기는 결과는 아쉽지만, 구단과 팬들에게 뜻깊은 경기로 남았다. 선수로서는 어땠나?

 

이전부터 서울과 안양 간의 역사를 잘 알고 있어 다른 경기보다 특별했다. 최선을 다해 뛰었지만, 결과는 아쉽게 되었다.”

 

- FC 안양이 리그 개막 3연패 이후 최근 41패를 기록하며 상승세를 보이는데 어떤 변화가 있었나?

 

아무래도 포메이션의 변화가 큰 듯하다. 초반에 3백을 사용하고 3연패를 했다. 이후 4백으로 바꾸니 결과가 달라졌다.”

 

- 팀 상승세에 더불어 정재희 선수의 상승세도 심상치 않다. 올 시즌 유독 둘의 호흡이 좋아 보이는데?

 

재희가 작년보다 축구 보는 눈이 트인 것 같다. 시야가 넓어지고 실력도 많이 늘었다. 또 뒷공간을 침투하는 플레이 스타일이다 보니 나와 궁합이 잘 맞는다. 그래서 자연스레 득점으로 이어졌다.”

 

- 정재희 선수 말고 팀에서 호흡이 좋은 선수가 있나?

 

아무래도 재희가 팀에서 침투나 볼 받는 타이밍이 좋다 보니 호흡이 제일 좋지만 다른 사람을 뽑아본다면 이번에 전북에서 임대 온 ()석제도 뒷공간을 침투하는 스타일이라 나와 잘 맞는 편이다. 또 팀이 워낙에 상승세라 전체적으로 선수들끼리 호흡이 좋다.”

 

- 안양 입단 이후 유독 서울 이랜드와 대전에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군입대 전 남은 3경기에서 대전과 서울 이랜드는 만나는데 공격 포인트를 기대해도 되는지?

 

당연하다. 내가 개막하기 전에 팬들에게 11골을 넣겠다고 약속했는데 이제 9골 남았다. 남은 3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해 11골을 채우겠다.”

 

취미반으로 시작해 프로선수로

 

- 축구를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동네에서 형들과 축구 할 정도로 좋아했는데 초등학교 1학년 때 이회택 축구교실 모집 전단을 보고 취미반으로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 끝날 즈음 땐가 축구선수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부모님에게 말했다.”

 

- 부모님이 흔쾌히 허락하셨나?

 

사실 내가 보기보다 공부를 잘했던 편이다. 그래서 어머니가 축구하는 것에 반대하셨는데 아버지는 흔쾌히 허락하신 건 아닌데 나중에 나 몰래 경기를 보러 올 정도로 크게 반대는 안 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 롤모델로 삼고 닮고 싶었던 축구선수가 있었나?

 

메시, 호나우지뉴, 이니에스타다. 메시는 말이 필요한가? 역대 최고의 선수라 설명이 필요 없다. 호나우지뉴, 이니에스타는 스페셜 영상을 따로 챙겨보면서 플레이하는데 참고했다. 내가 축구선수로서는 신체조건이 강점이 아닌데 이 선수들도 마찬가지로 신체조건이 강점이 아니다. 이 선수들이 플레이하는걸 보고 어깨를 미리 넣는다든지, 경합 전에 패스를 미리 준다든지 이런 식으로 영리하게 플레이하려한다. 그래서 그런지 선수 생활 동안 큰 부상이 별로 없다.”

 

- 롤모델을 보니 그럼 바르셀로나를 좋아하는 건가?

 

그렇다. 바르셀로나 좋아한다. 내가 피파 온라인게임 하는데 팀도 바르셀로나로 싹 다 맞췄다.”

 

- 취미반으로 시작하다가 2006년 고등학교 2학년 때 U20 대표팀에 차출된 걸 보면 보통 잘한 게 아닌 것 같다.

 

사실 운이 정말 좋았다. 여러 감독님의 추천으로 보게 된 U20 대표팀 테스트에서 정말 운이 좋게 뽑혔고 2007U20 캐나다 월드컵 직전 대회까지 차출되었다. 그러다 보니 또래들 사이에서 좀 유명해졌다.”

 

- 대표팀을 운으로 들어갈 수가 있나? 요즘은 겸손보다 자기 PR이 대세다. 자랑 좀 해달라.

 

글쎄 어려서부터 볼 좀 찬다는 소리는 듣고 다녔다. 청소년 대표팀도 뛰어봤고, 명지대 축구부에서 10번 달고 뛰었다. 이 정도면 될 것 같다.”

 

- 고맙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아픈 얘기를 좀 해봐야 할 것 같다. 2007U20 캐나다 월드컵 최종 명단에서 탈락했다.

 

내가 월드컵 개막 2주 전에 캐나다까지는 갔다. 거기서 최종 2명이 탈락했는데 그게 나와 지금 상주 상무에서 뛰는 김성준이다. 탈락 통보받고 비행기 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때는 무덤덤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면 아쉽다. 사실 소집도 계속되었고 출전도 많이 했는데.”

 

- 명지대에서 10번 달고 뛰다가 2009년 드래프트를 통해 대구에 입단했다. 지금은 드래프트가 없는데 지명받았을 때 어땠나?

 

사실 조금 실망했다. 개인적으로 높은 순위로 지명될 줄 알았는데 5순위라 아쉬웠다. 그래도 프로 무대에 진출하게 되었으니 설레는 기분도 있었다.”

 

- 설레는 기분으로 데뷔한 프로 무대에서 신인이 34경기나 뛰었다.

 

당시 감독님이 나를 좋게 보셨는지 내게 기회를 많이 주셨다. 하지만 프로와 아마추어 무대는 피지컬, 속도, 압박이 차원이 달라 처음에 적응하는데 고생했다.”

 

- 데뷔전과 데뷔골 기억하는지?

 

성남전이 데뷔전이었다. 전반전은 내가 어떻게 경기를 뛰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정도로 긴장을 많이 했다. 후반전 가서야 긴장 풀리면서 경기를 괜찮게 마무리했다. 데뷔골은 강원과의 경기에서 넣었는데 그것도 사실 운이 좋아 들어갔다. 내가 슈팅하고서도 놀랬다. 각도상으로 나가는 각도였는데 운 좋게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 성공적인 데뷔시즌을 치렀는데 2011년에 대구와 계약을 해지한 뒤 일본으로 이적한다. 국내 팀도 아니고 일본에서도 2부리그 팀으로 가게 되었다.

 

대구에서 데뷔 시즌을 치루고 나서 감독님이 교체되었다. 이영진 감독님이 오셨는데 내가 선호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는지 출전기회가 많이 줄었다. 주전에서 백업으로 처지가 급격하게 바뀌다 보니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가 많았다. 그래서 이적을 선택하게 되었다. 당시 계약 조항 상 국내 리그 이적은 할 수 없어 급하게 해외를 알아봤다. 처음에는 연변 FC 입단테스트를 받다가 J리그 2부에 있는 파지아노 오카야마에서 오퍼가 와서 일본을 택했다.”

 

- 급하게 진출한 일본 무대는 어땠나?

 

지금은 오카야마 환경이 좋아졌는데 내가 뛰던 당시는 열악했다. 통역도 없고 우리나라와 문화적으로 다르다 보니 초반에는 적응이 어려웠다. 그래서 그런지 빨리 적응을 하기 위해 일본어 학습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지금도 일어 회화는 가능할 정도고 일본 지인이 놀러 오면 내가 다 안내한다. 언어가 통하니 오카야마 적응이 수월해졌고 축구 적으로도 활약이 괜찮았다. 날 응원해주는 팬도 많았다.”

 

- 오카야마 일본팬이 지금도 응원해준다고 하던데?

 

아주머니 팬이신데 아들을 데리고 가끔 안양까지 와서 응원해주신다. 이적한 선수를 계속해서 응원해주기 어려운 일인데 선물도 주고 플래카드도 제작해서 열정적으로 응원해줘서 너무 감사하다. 이런 팬들 덕분에 오카야마에서 뛰던 시절은 프로 생활 중 가장 좋았던 순간으로 남아있다.”

 

- 그런데 오카야마에서 잘 뛰다가 2013년 겨울에 폴란드리그는 왜 간 건가?

 

이게 좀 복잡하다. 오카야마에서 2년 정도 뛰고 팀에서 신임을 많이 받아 재계약 제의도 있었다. 당시 여러 가지 사정이 있어 재계약을 거절하고 FA로 풀렸다. 그리고 폴란드리그 야기엘로니아 비아위스토크로부터 오퍼를 받고 유럽 무대 도전에 흥미가 생겨 가게 되었다. 가서 겪어보니 축구적인 부분에서는 국내 무대와 비슷했다. 전술적인 면보다 피지컬적인 면을 강조하는 리그였다. 그런데 축구 외적으로는 정말 적응하기 어렵더라. 내가 있던 지역이 폴란드에서도 외진 곳이라 한국사람이 나 혼자였다. 통역도 없고 내가 영어도 잘 못해서 언어적으로 전혀 통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곳은 4월에도 눈이 내리더라. 문화적인 부분, 기후적인 부분에서 도저히 적응되지 않으니 외롭고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팀에서도 내가 적응을 잘 못 하는 걸 알았는지 계약조항이 원만하게 해결돼 6개월 만에 계약 해지하고 다시 오카야마로 돌아갔다. 폴란드에서의 경험은 프로생활 중 가장 힘든 기억으로 남아있다.”

 

- 일본으로 복귀했다가 2014년에 다시 국내 무대로 돌아왔다.

 

군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국내로 돌아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운이 좋게 울산 현대에서 오퍼가 와서 이적했다. 울산에서 2시즌 동안 있었는데 처음 조민국 감독님 때는 기회를 조금 받은 편이었다. 그런데 다음 시즌 윤정환 감독님으로 바뀐 시스템에서는 1경기도 못 뛸 정도로 플랜에서 제외되었다. 프로선수가 경기에 뛰지 못하면 정말 힘들다. 폴란드리그 시절과 울산 현대에서 마지막 시즌은 프로생활 중에서 가장 힘들었다.”

 

- 힘든 타이밍에 FC 안양에서 임대제의가 왔고 안양으로 왔다. 그런데 사실 1부리그에서 뛰다가 2부리그 팀으로 임대 가는 것이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그때 내 상황이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라 안양 제안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선수로서의 가치가 낮아진 상황이라 경기에 출전해 가치를 올리고 싶었다. 안양에 가지 않았으면 지금 경찰청도 못 갔을 거다. 당시 이영민 감독님이 직접 전화로 내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셔서 안양으로 가는 것을 결심하게 되었다.”

 

- 사실 그동안 울산 현대에서 FC 안양으로 임대 온 선수가 많다. 최진수, 김선민, 김효기 등 선수들을 통해 안양에 대해 들은 이야기가 있나?

 

많이 들었다. 안양이 아기자기하고 패스를 통해 만들어가는 팀이라고 들어 내 플레이 스타일과 맞겠다고 생각했다. 또 안양이 수도권에 있다 보니 본가와 거리도 가까워 안양에 대한 호감도가 컸다. 그리고 지금은 아산 경찰청 코치로 계신 최익형 코치님이 청소년 대표팀 시절

은사님이신데 당시 안양에 계셨다. 팀에도 개인적으로 친한 이슬기, 유종현이 있다 보니 안양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 수월한 적응 덕분인지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지난 시즌 38경기 11골을 기록했는데 팀 내 득점 1, 공격 포인트 1위 기록이다.

 

작년이 되는 해였던 것 같다. 이영민 감독님이 신뢰를 주셔서 전폭적으로 경기에 출전하다 보니 더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 결과 중요한 순간에 집중해 골을 많이 기록한 것 같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득점이 승리로 이어지지 않은 경기가 많았다. 그래도 저번 시즌은 오카야마 시절과 더불어 프로생활 중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이다. 경기력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만족스럽게 보낸 시즌이었다.”

 

- 프로생활 동안 대구 FC, 파지아노 오카야마, 야기엘로니아, 울산 현대, FC 안양을 거치며 많은 지도자를 만났다. 본인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지도자는 누군가?

 

변병주 감독님과 이영민 감독님이다. 변병주 감독님은 대구에서 프로 데뷔했을 때 감독님이셨는데 신인한테 기회를 주기 어려운데 믿고 기용해주셨다. 덕분에 자신감이 올라왔고 점점 플레이가 좋아져서 그때 많이 성장했다. 이영민 감독님은 작년에 안양으로 임대 왔을 때 감독님이셨는데 내가 선수로서 밑바닥을 치고 있을 때 믿어주시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 주신 분이다. 이영민 감독님은 선수들과 소통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었는데 내가 만약에 나중에 지도자가 된다면 배울 부분이 있다고 느꼈다. 또 지금 감독님이신 김종필 감독님은 카리스마가 장난이 아니다. 선수들에게 말을 많이 안 하시는데 필요한 부분은 묵직하게 한마디 하신다. 근데 그게 도움이 많이 된다. 이미지와는 달리 생각보다 선수들을 편하게 해줘서 약간 놀라웠다. 지금 안양의 상승세도 감독님 덕이 크다.”

 

군입대, 새로운 도전의 시작

 

- 이제 군대 얘기를 해보자. 511일이 입대니 얼마 남지 않았다. 기분이 어떤가?

 

한달 전까지는 와 닿는 게 없었는데 이제 하루하루 지날수록 압박감이 오고 있다. 스트레스를 느낄 바에 그냥 빨리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그런데 군사훈련을 받으면 지금 좋은 경기감각이 떨어질 텐데 걱정된다.”

 

- 나는 입대할 때 어땠는지 기억도 잘 안 난다. 주위 동료나 지인들이 해준 조언이 있나?

 

힘들다고만 하더라. 그리고 그 나이에 훈련소 생활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 반 놀림 반이었다. 개인적으로 친한 서용덕이 지금 아산 경찰청에서 복무하고 있다. 물어보니까 별말 없이 와보라고 하더라. 선후임 사이로 만나게 될 텐데 뭐 군대니 어쩔 수 있나.”

 

- 주전 미드필더 공백으로 인해 안양이 받는 타격이 클 텐데.

 

그럴 것 같다. 그래도 힘내서 1부리그에 올라가면 좋겠다. 올라가서 잔류해 내가 복귀했을 때도 안양이 1부리그에 있으면 좋겠다. 안양이 축구하기 좋은 환경이기 때문에 1부리그에 올라가면 지금보다 더 관심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 자연스레 팬들도 많이 생길 것이다.”

 

- 너무 날로 먹는 거 아닌가. 그런데 승격경쟁이 치열한 8, 9월에 아산 경찰청과 FC 안양이 만난다.

 

난 아마 그때 몸이 올라오지 않아 출전 못 할 것 같다. 안양 승격하는 데 방해되지 않을 것이다.”

 

- 선수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

 

물 흘러가듯이 뛰고 싶고 최대한 오래 선수생활을 하고 싶다. 나이가 있다 보니 도전보다 프로선수 생활을 오래오래 하고 싶다. ‘이제 정말 은퇴해야 하겠다.’란 생각 들 정도로 하고 싶다. 그런 면에서 일본 미우라 선수는 정말 대단하신 분이다.”

 

- 마지막으로 안양 팬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입대까지 2주 남았는데 군대 가서도 정말 열심히 하겠다. FC 안양 응원 많이 해주시고 저 김민균도 많이 응원해주시면 좋겠다.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겠다!”

 

 

+ 2017년 5월에 진행한 인터뷰

+ 지금은 FC안양이 아닌 서울이랜드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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