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안양 칼럼 - 누구보다 화려했고 뜨거웠던 우리 축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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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칼럼

FC안양 칼럼 - 누구보다 화려했고 뜨거웠던 우리 축구팀

by 박달타운 2020. 5. 14.

 

연고 이전 설욕에 성공한 AFC 윔블던

 

지난 3월 15일, 영국 윔블던에서 열린 잉글랜드 3부리그 38라운드 AFC 윔블던과 MK 던스 경기에 영국 축구팬들과 미디어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왜 그랬을까. 두 팀 간의 경기는 2부 리그로의 승격을 노리는 팀들 간의 경기도 아니었고, 강등 걱정도 없는 중위권 팀들 간의 경기였다. 이유는 두 팀 모두 연고 이전이라는 악연으로 얽혀 있는 팀이었기 때문이다.

 

런던 남서부 윔블던 지역에 연고를 둔 윔블던 FC는 1889년 창단되어 약 100년 뒤 1986년에 처음으로 잉글랜드 1부리그에 올라갔다. 1988년에는 FA컵에서 리버풀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짧은 영광을 누렸고 이후 2000년에 18위를 기록하며 강등되기 전까지 잉글랜드 1부 리그에서 13시즌 동안 중하위권 터줏대감 노릇을 했다.

 

그러나 윔블던 구단은  2001년 8월 홈구장 신축을 명분으로 윔블던에서 100km 떨어진 밀턴 케인즈로 연고 이전을 선언했다. 영국 축구협회로부터 승인받아 2003/04 시즌을 마지막으로 윔블던을 떠나 연고지를 옮겼고 팀명 또한 MK 던스로 바꿨다.

 

응원하던 팀이 사라진 윔블런 FC 팬들은 AFC 윔블던이라는 팀을 재창단해 지역 리그인 9부리그부터 출발해 MK 던스와 만나기를 고대했다. 6차례의 승격 끝에 마침내 2016/17 시즌 3부리그에서 두 팀이 최초로 같은 무대에서 뛰게 되었다. 작년 12월 10일 MK 던스 홈구장에서 펼쳐진 21라운드 경기에서는 AFC 윔블던이 패배해 설욕에 실패했다. 그 후 3개월 뒤 AFC 윔블던 홈 구장 킹스메도에서 열린 경기에서 AFC 윔블던은 스코어보드에 MK Dons의 ‘Dons’를 표기 안 할 정도로 설욕을 다짐했고 결국 2대0으로 승리하며 14년간 벼르던 복수에 성공했다.

 

안양과 서울 악연의 시작

 

스포츠 영화로 만들어도 될 정도의 연고 이전 스토리가 해외에만 있을까? 우리나라 K리그에서도 조만간 볼 가능성이 있다. FC안양과 FC서울 두 팀 또한 AFC 윔블던과 MK 던스처럼 연고 이전으로 얽혀 있는 관계이다. 2004년 안양 LG가 서울로 연고지를 옮기면서 두 팀의 악연은 시작됐다. 2013년 안양 축구 팬들과 안양시 주도로 FC 안양이 창단되었고, 최대호 전 안양시장이 창단식에서 “서울을 통쾌하게 꺾는 그날, 62만 안양 시민들과 함께 승리의 함성을 외치겠다.”라고 선언할 정도로 서울에 설욕을 다짐했다.

 

FC안양이 리그에 참가한 5시즌 동안 FC안양이 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하지도, FC서울이 K리그 챌린지로 강등되지 않아 두 팀의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3월 29일 호남대와의 FA컵 2라운드에서 안양이 후반 추가시간에 터진 극적인 결승골로 승리해 다음 라운드에서 FC 서울을 만나게 되었다. 2004년 연고지 이전 이후 13년간의 기다림 끝에 성사된 만남에 축구 팬들과 관계자들의 관심이 어느 빅매치만큼이나 집중되고 있다.

 

연고 이전 이후 13년이 흘러 축구 팬들 사이에서도 기억이 흐려지고 있고, K리그를 최근에 접한 팬들은 FC 안양과 FC 서울의 악연을 제대로 알지 못해 지면을 통해 다시 한 번 안양 축구사를 되짚어 보고자 한다.

 

붉고 붉었던 안양의 축구

 

1991년부터 서울을 연고로 하던 LG 치타스는 2002년 월드컵 개최국 선정을 앞두고 실시한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으로 인해 1996년부터 안양으로 옮기고 팀명 또한 안양 LG 치타스로 변경한다. 이후 8시즌 동안 1998년 FA컵 우승, 2000년 리그 우승, 2002년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준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리그 내 강팀으로 군림했다. 관중 성적 또한 훌륭했다. 110번의 홈경기에서 평균 관중이 1만 명을 넘을 정도로 안양의 축구 열기는 어느 팀보다 뜨거웠고 수원 삼성과의 지지대 더비라는 확실한 콘텐츠 또한 존재했다.

 

안양 팬들 사이에서는 FA컵을 우승한 1998년이 가장 특별하게 남아있다. 1999년 조광래 감독 부임 이후 안양은 강팀으로 변모했지만 그 이전까지는 리그 하위권을 전전하던 팀이었다. 1998년 당시 박병주 감독의 지도로 동대문운동장에서 강호 울산 현대를 꺾고 FA컵 우승한 것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팬들이 많다. 또한, 지금은 경기장 내 반입이 금지된 홍염이 안양 LG 치타스가 1998년부터 우리나라 최초로 응원에 사용했다. 그래서 아직도 올드팬들에게 안양 LG 치타스는 홍염으로 강하게 인식되어 있다.

 

1999년 조광래 감독 부임 이후 팀을 빠르게 재편시켰다. 미드필더를 중시하는 세밀한 패스 축구를 접목해 현대적인 축구 스타일을 구사했다. 그 결과 경기력은 물론 성적 상승으로 이어졌고 다음해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시즌 내내 경기력과 결과가 좋다 보니 당시 팬들 사이에서는 안양의 리그 우승을 당연시 여겼고, 안양에 대한 자부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팀 성적과 구단 측의 노력은 연고지 정착으로 이어져 당시 안양은 끈끈한 가족 같은 팬 문화와 함께 충성도 높은 축구 팬이 만들어졌다. 지금 보면 촌스러워 보이는 안양 LG의 붉은 유니폼을 경기 날이 아닌 평상시에도 입고 일상생활을 하는 팬들이 많았다. 또 모기업인 LG 제품을 구매하며 구단에 대한 애정에 아낌없이 투자했다.

 

허울뿐인 연고지 정착의 민낯

 

영원할 것 같던 안양 LG와 안양 축구 팬들의 관계는 2003년부터 불안함이 감지된다. 팬들 사이에서 안양이 연고 이전을 할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고, 구단 측에서는 뜬소문이라며 팬들의 우려를 잠재웠다. 시즌이 끝나고 팬들과 감독이 참여한 뒤풀이 자리에서 “다음 시즌을 기대해 달라”는 감독의 멘트를 듣고 팬들은 머릿속에서 연고 이전의 가능성을 지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문는 현실이 되었다. 2004년 2월 2일 당시 한웅수 안양 LG 단장은 프로축구단 자립기반 구축을 명분으로 서울 연고 이전 추진을 공식화했다. 충격에 빠진 팬들은 구단 연고 이전을 막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다. 시위, 서명운동, 단장 면담 시도 등 생업을 뒤로하고 반대운동에 참여한 팬들이 있을 정도였다. 안양 축구 팬 뿐만 아니라 지역 유지,  타 팀 팬까지 반대 운동에 동참했을 정도로 당시 안양 LG 연고 이전 추진은 단순히 안양 축구 팬들만의 문제가 아닌 지역 전체와 K리그 축구 팬 모두에게 해당하는 문제였다.

 

안양 팬들의 반대 운동과 LG에 대한 반감은 2004년 2월 10일에 절정에 달했다. 그날 오후 안양시 평촌 중앙공원에서 개최된 ‘안양 LG 서울이전 규탄대회’에 당시 신중대 안양시장, 최경태 시의회 의장, 김정현 안양 LG 레드 서포터즈 회장, 지역 축구인 등 3천여 명이 참여해 서울 연고지 이전 추진을 규탄하는 한편 LG 그룹 제품에 대한 화형식과 불매운동까지 결의했다. LG 제품 화형식에서는 컴퓨터, TV, 냉장고, 휴대전화 등의 LG 제품 포장박스를 쌓아 불태웠다. 또한, 주최 측은 불매운동을 위해 “LG 가전제품 안 사기, LG 생활용품 안 사기, LG 휴대전화 안 사기, LG 홈쇼핑 이용 안 하기, LG 정유에서 기름 안 넣기” 등 5개 행동요령을 선포하기도 했다. 

 

붉은 색을 잃어가는 안양의 축구

 

가족처럼 끈끈하던 안양 서포터들도 연고 이전에 따라 분열됐다. 연고 이전을 막자는 부류, 팀 따라 서울로 응원팀을 바꾼 부류, 라이벌 수원을 응원해 서울에 복수하자는 부류로 나뉘었다. 선수들 또한 구단의 연고 이전 움직임에 동조하는 부류와 반대하는 부류로 나뉘었고, 일부 선수들은 아예 다른 팀으로 이적을 시도했다. 이렇게 붉고 붉었던 안양의 팀 컬러는 점점 색이 희미해져갔다.

 

2004년 3월 29일은 안양 축구 팬들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안양 LG 허창수 구단주와 이명박 서울시장이 참석한 프로축구 서울 연고 협약식이 열린 날이었다. 이날 이후 공식적으로 안양 LG는 서울로 이전했다. 안양 LG 한웅수 단장은 “서울로 연고지를 복귀하더라도 안양 지역 축구 저변 확대와 발전을 위한 구단의 지원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2013년 FC안양 창단 이전까지 안양의 축구는 9년간 긴 동면기에 들어가며 안양의 붉은색은 빛을 잃었다.

 

 

 

 

  + 2017년에 작성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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