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꿀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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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꿈꿀 기회

by 박달타운 2020. 4. 7.

 김연아, 박지성, 박태환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세계무대에서 우리나라를 빛낸 최고의 선수들이기도 하지만 세 사람 모두 유망주 시절부터 장학금을 받았다. 장학금으로 인한 든든한 후원이 그들을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한 밑거름으로 작용했다. 지금 나에겐 국가장학금이 내 꿈을 위한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하고 있다.

 

 2015년 당시 나는 군 복무를 마치고 아르바이트를 구해 돈을 벌고 있었다. 전역 시기와 1학기 복학 시기가 겹치지 않아 1년 휴학 신청을 하게 되었고 조기 복학을 통해 2학기에 복학을 할까 고민도 했지만, 조기 복학은 장학금 지급이 안된다는 소식에 복학 대신 열심히 돈을 벌자고 다짐했다. 아르바이트 구인 사이트를 샅샅이 뒤져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는 연구소 실험 보조 자리에 계약직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초등학생 때 과학 실험 이후 과학 도구 근처도 안 간 천생 문과생이었던 내게 평생 볼일도 없을 것 같은 각종 화학 용액들과 난생처음 들어오는 용어들을 접하게 되었다.

 

 화학 용액을 다루다 보니 주의를 기울이며 업무를 진행했지만, 업무에 익숙해지고 평소보다 긴장이 풀렸던 그 날 화학 용액 몇 방울이 내 피부에 묻었고 얼마 안 가 극심한 따가움을 느꼈다. 바로 피부과에 가 진료를 받으니 다행히 가벼운 염증 진단을 받았다. 그 뒤로 일주일을 병원과 회사를 오갔다. 병원비도 내 돈으로 내고, 더 근무하다가 이 것보다 크게 다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홧김에 그만둘까 했지만 참았다. 돈이 필요했다. 갑작스러운 추가 근무 요구에도 참았다. 돈이 필요했다. 가끔 과도하거나 부당한 업무지시에도 참았다. 돈이 필요했다. 그렇게 버티고 버텨 월급을 받았다. 기대는 실망으로 변했다.

 

 통장에 찍힌 월급은 내가 생각했던 금액보다 적었고 회사에 문의해보니 주휴수당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답변을 들었다. 주5일 대략 50시간을 일해 주휴수당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었고, 회사 규모도 영세한 중소기업이 아니라 황당할 뿐이었다. 계약직 직원들과 회사의 부당한 횡포 아닌 횡포에 분개하던 중 답답한 마음에 내가 나서서 회사 측에 주휴수당 미지급에 대한 이유를 물었다. 인사팀 직원은 "주휴수당 지급은 의무적으로 지급하는 수당이 아니에요."라며 답변했고 예전 일했던 근무지에서 받은 주휴수당을 얘기하니 내년부터 주휴수당을 지급할 계획이라고 갑자기 말을 바꿨다. 그 후 실랑이가 지속하다가 인사팀 직원은 인사팀에서 더 이야기해보고 결과를 알려주겠다며 나를 다시 근무지로 보냈다. 몇 시간 뒤 나는 해고 통고를 들었다.

 

 회사에서는 주휴수당 미지급에 대한 부당함을 인정하고 다음 달 월급부터 주휴수당을 지급하기로 했지만 대신 나에게는 태도 불량을 이유로 해고 결정이 났다. 졸지에 실업자 신세가 된 나는 멘탈이 산산조각이 났고 그 뒤로 업무를 어떻게 마무리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평소 술을 별로 즐기지 않는 내게 그날은 술이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신기한 경험으로 남았다. 복학 때문에 다시 일을 구하기에는 시간이 애매해 가끔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며 시간을 보냈고 등록금을 얼추 모아 복학을 했다. 복학 이후에는 학교 다니면서 쓸 교통비, 식비, 통신비를 비롯한 생활비를 벌기 위해 주말에 웨딩홀 아르바이트를 했다. 웨딩 업계가 가장 바쁜 시즌이 봄이다 보니 웨딩 예약이 항상 풀로 차있었고 오전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할 정도로 주말을 아르바이트하는데 허비했다.

 

 일을 마티고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어 밀린 학교 공부나 과제, 자격증 준비할 새도 없이 바로 곯아떨어지기 일 수였다. 그러다 보니 과제나 시험 준비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가 어려웠고 결과는 나중에 학점으로 드러났다. 아쉬운 학점으로는 학과 내 장학금을 받을 수 없었고 부족한 등록금을 모으기 위해 다시 방학 기간에 일해야 했다. 일하면서 국가 장학금 신청 안내 문자를 받고 반신반의하며 지원했다. '나와도 얼마나 나오겠어.'라고 생각하며 다음 학기에 쓸 등록금과 생활비를 열심히 벌었다. 그리고 한 달 뒤 다음 학기 등록금 고지서를 보고 난 소리를 질렀다. 국가 장학금으로 인해 등록금이 절반 가까이 줄었기 때문이었다. 길 한복판에서 모르는 사람이라도 붙잡고 덩실덩실 춤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돈을 벌어 등록금 내기 급급했던 내게 장학금은 미래를 계획하는 계기가 되었다. 여윳돈으로 인해 학기 중 아르바이트를 할 필요가 없어져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과제나 시험 준비에 더 투자할 수 있었고 학교 성적도 자연스레 올랐다. 평일엔 학교, 주말엔 아르바이트로 인해 피곤함에 절어 집에서 잠만 자던 생활이 스케이트보드도 타고 전시회도 보는 등 취미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어 삶의 질이 높아졌다. 또한 평소 스포츠 기자를 꿈만 꾸고 별다른 준비를 못 했으나 장학금 덕분에 프로 스포츠팀 대학생 기자단을 지원해 향후 진로까지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국가 장학금을 받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예전처럼 등록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다가 갑질 아닌 갑질을 당했을 수도.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학기 중에 일하다가 학업에 소홀해져 본말이 전도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외견상으로는 장학금을 받기 전이나 지금이나 바쁘기는 매한가지다. 평일에 학교 주말에 아르바이트하던 생활이 평일에 학교 주말에 대외활동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하지만 예전에는 내 인생을 주도적으로 끌고 가지 못하고 무엇인가에 끌려간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국가 장학금을 받은 이후 지금의 생활은 내 인생을 내가 주도하고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국가 장학금을 자양분으로 나는 내 꿈을 이룰 수도 혹은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시도했던 일련의 과정들은 나에게 중요한 유산으로 남을 것이며 또 다른 꿈의 원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국가 장학금은 내게 꿈꿀 기회를 주었다.

 

 

 

+ 2017년 수기 공모전에 출품할 때 작성한 글이다.

+ 다시보니 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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